18 October 2024
충격적인 뉴스들이 지면을 뒤덮은 가운데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를 막기 위한 '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이 26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는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단순 시청 행위도 범죄에 포함하며, 피해자 회복 조치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 세 건이 모두 통과되었는데요.
이날 통과된 딥페이크 관련 법안은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성폭력처벌법),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청소년보호법),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등 총 3개 법 개정안입니다. 지난 8월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 착취물 범죄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특히 가해자와 피의자 상당수가 10대인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준 가운데, 이번에 개정된 법이 딥페이크 이용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데요.
딥페이크, 반포 목적 없이 제작만으로 법적 처벌 가능
기존 법에서 허위 영상물을 "반포할 목적"으로 편집·합성 또는 가공한 자를 처벌한다는 조항에서 "반포할 목적"이라는 단서 조항이 빠져,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불법 합성물을 제작할 경우 목적과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공개 수사 항목을 신설해 긴급을 요할 때는 경찰이 상급 경찰관서의 승인 없이 비공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직접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의 삭제와 차단을 요청하도록 한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경찰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삭제를 요청하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조치에 나설 것을 요청해야 하기 때문에 신속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거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불법합성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
한편으로 이번 법안 입법 과정에서 지난 2020년에 있었던 <N번방 방지법> 논의 과정에서 나왔던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이 다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도읍, 정점식 의원은 불법합성물 처벌조항 신설 자체에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굳이 (불법합성물 범죄를 지칭하는) 새로운 구성요건을 만들 필요가 있나. 그냥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면 음란물로…"(김도읍, 당시 미래한국당 의원),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긴다 이것까지 (처벌) 갈 거냐"(정점식, 당시 미래한국당 의원),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만들 수도 있거든요"(김인겸,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청소년들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하거든요… 그것까지 처벌하겠다고 하는 건 너무 과한 것 아니냐"(김오수, 당시 법무부 차관) 등의 발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입법 풍경과 비교해보면 고작 4년 전에 있었던 논의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만큼 딥페이크 성범죄가 단순히 음란물 제작/반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성형 AI의 악의적 사용과 'N번방 사건'부터 공론화 되었 사회공학적 해킹, 그리고 미성년자에 대한 협박/성착취와 같은 문제와 결합하여 더욱 복잡하고 심각한 범죄 양상을 보였다는 점, 그리고 이런 방법에 사람들이 접근하기 너무 쉽다는 점, 한번 온라인 상에 유포되면 완벽한 삭제가 사실상 힘들다는 점에서 사회 문제로 변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찰청 역시 법적 해결책 뿐 아니라 기술적 문제에 대해서도 칼날을 뽑아 들었습니다.
허위조작 콘텐츠 탐지와 차단을 위해 감청 필요?
경찰청은 딥페이크/딥보이스 등 진화하는 허위 콘텐츠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딥러닝에 기반한 허위조작 콘텐츠 복합 탐지 기술을 개발, 2025년 27억 원 등 2027년까지 91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쟁점이 생겼는데요. 현재 성폭력처벌법이나 청소년성보호법은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고 있는 감청 대상에서 제외, 감청이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마약범죄와 관련되어 있으면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제1항 6호에 근거해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가 허가될 수 있다는거죠.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형사 3부 김세희 검사는 "통신비밀보호법 5조 1항 13호가 신설되어야 한다"며, "피해자의 불법·허위영상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해당 영상물을 발견하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게 차단을 요청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며 "인간의 DNA를 분석하듯 영상의 고유 구성 요소를 분석하는 DNA 필터링 기술 등을 활용해 인터넷 공간을 공유하는 세계 주요국과 업체들이 협약을 맺어서 피해자가 세계 어느 나라의 수사기관에 불법·허위영상물을 신고하더라도 협약의 가맹국과 업체들이 해당 영상물을 자동으로 식별하고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딥페이크 범죄 방지 해외 사례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우려
실제 해외에선 이미 디지털 성범죄 관련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70여 개 나라가 가입한 <부다페스트 협약(디지털 범죄 대응 공조를 위한 국제협약)>은 영장이나 국제공조 절차에 정식으로 착수하기 전 업체가 데이터를 강제 보존(Litigation Hold)하도록 규정해두었습니다.
독일, 미국 등은 독립몰수·민사몰수 등 범죄자를 아직 잡지 못한 경우에도 먼저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범죄수익이 없는 곳에서는 범죄도 자라기 어렵기 때문이죠.
이런 요구에 발맞추어 9월 23일, 법제사법위원회에는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정청래의원 등 10인)이 발의되었습니다. 이 개정안엔 5조 1항에 13호가 추가되는 것이 핵심인데요. 바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및 아동 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범죄"라는 항목입니다.
이에 대해 주로 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지켜지던 개인 통신의 보호가 완전히 무력화,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들은 "(경찰은 무고한 사람도) 범죄자인지 관심 없다. (지난 동탄 무고 신고 사건 처럼) 아무튼 알던 모르던 다 잡아들어가게 될 것", "아청법과 딥페이크법 관련 수사를 근거로 하여 통신보호를 무시하고 테러방지법처럼 경찰이 임의로 패킷을 도/감청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딥페이크를 명분으로 무차별 감청과 개인정보 유출이 가능할까?
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은 '다음 각호의 범죄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허가할 수 있다'고 제약조건을 들고 있습니다.
1항의 1호에서 12호까지에 있는 수많은 다른 죄에 대해서는 이미 법적으로 통신제한조치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이 법에서 성폭력 범죄와 관련한 조항이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서 갑자기 국가에서 성범죄를 핑계로 아무나 감청할 수 있게 되진 않습니다. 또, '경찰이 몰아가면 감청당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사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동법 6조를 보면 검사는 제5조 1항의 요건이 구비된 경우에만 법원에 통신제한조치를 허가하여 줄 것을 청구해야 합니다.
청구는 필요한 통신제한조치의 종류, 목적, 대상, 범위, 기간, 집행장소, 방법 및 당해 통신제한조치가 제5조 제1항의 허가요건을 충족하는 사유 등의 청구이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하여야 하며, 통신제한조치의 기간은 2개월을 초과하지 못하고, 목적이 달성되었을 경우에는 즉시 종료해야 하죠.
연장을 청구할 수는 있으나 1년을 초과할 수 없어요. 3년까지 연장이 가능한 것은 내란/외환 등 심각한 경우의 범죄에 한합니다. 거기다 애초에 범죄 용의 사실이 인정된 피의자를 대상으로 하는 법이며 경찰이 아닌 검찰이 까다로운 서류를 법원에 제출해 법원이 허가했을 때만 통신제한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과 어긋나 있다는거죠. 심지어 그 통신제한조치 역시 방법이나 기간, 감사 등의 각종 제한 요인을 주렁주렁 매달아놓고 있다는 겁니다.
생성형 AI의 사용이 점점 더 확산되고 점점 더 정밀해지는 상황에서 기술과 결합하여 발생한 이번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은 단순히 음란물 제작이나 일탈 범죄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한 개인에게 경제적/사회적 피해를 모두 일으킬 수 있는 종합 범죄의 한 유형으로 진화한 심각한 사회 문제, 사이버보안과 현실에서의 성 문제가 결합한 문제로 봐야합니다. 그런 면에서 입법부가 평소보다 훨씬 빨리 움직인 것은 다 이유가 있는거죠.
비록 개인의 통신 비밀이라는 사생활 보호에 대한 쟁점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헌법을 비롯한 법리 체계와 사법 체계상 아직까지 개인의 통신이 모조리 노출되고 소위 '유죄 추정'에 근거한 무차별 수사가 발생할 것이라는건 억측에 가까워 보입니다.